상항 한국인 연합 감리 교회 100년 연혁

한국인들의 하와이 이민이 1903년에 시작되었지만, 미 이민국 기록에 의하면 상항에는 1880년경부터 중국인들을 상대로 한 인삼장사들과 적은 수의 유학생들이 정착하기 시작했음.

1903.9.23 안창호, 이대위등 10여명의 정치 망명인과 유학생 그리고 소수의 상인들이 친목회를 조직하고 교인 숙소를 순회하면서 기도회를 시작하고 예배를 보기 시작함.
1905.7 문경호 전도사가 북감리교회 Johnson 선교사의 도움으로 전도회를 조직하고 예배를 인도함.
1906.12.16 미국남감리교회 태평양지역 동양인 선교지방감리사 C. F. Reid 목사와양주삼 전도사(초대)에 의해 2350 California St.에 상항한국인교회 설립함. 3층집을 빌려서 1층은 식당으로, 2층은 예배당으로, 3층은 숙소로 사용하였고, 밤에는 영어를 가르치는 등 전도와 친교의 장소로 사용함.  25명의 창립회원이 있었음.
1908.3.23 창립교인 장인환, 정명운이 일본의 앞잡이며 고종황제의 정치고문인 D. W. Stevenson을 페리부두에서 암살함.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세계 각처에서 조국독립운동이 시작됨.
1908.12.21 양주삼 전도사가 월간지 “대도”(大道)를 창간하고 매월 1,000부씩 발행하여 반은 미국전역과 멕시코, 중국 그리고 반은 한국에 우송하였으며 후에 일본정부의 반대로 한국에 배포할 수 없어 정간하였다가 다시 발간하였으나 일본정부의 압력으로 미감리교 선교부의 재정지원이 중단되어 1912. 8월 폐간하게 되었음. 성경해설, 교양, 미국내 교포소식과 고국소식 전달 등 다목적으로 사용되었음.
1909.12 윤병구 전도사(2대)가 1년간 봉직하며 “대도”의 주필을 겸함.
1910. 9.14 교회를 1762 O’Farrel St.로 옮김. 주일 예배는 232 Perry Street에 있는 공립회관에서 드리기 시작하였음.

1911.2.1 이대위 목사(3대)가 부임하여 17년간 봉직하는 동안 조국을 대표하는 공사 업무를 담당하여 고국 유학생과 정치망명자들의 미국입국을 도움. 감리교 선교국에 청원하여 교회 건축을 약속 받음.
1911 여름에 2123 Bush Street으로 교회이전
1914.12.24 교회장소를 1053 Oak Street에 있는 국민회 소유의3층 건물로 이전하였음(4번째). 
1928.9 황사선 목사(4대)가 부임하여 14년간 봉직함.
1930.6 미 남감리교 여선교회로부터 받은 대지와 공사비를 포함한 총 비용 $25,000로 새 예배당을 1123 Powell St.에 건축하고 200 여명의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다 헌당식을 가짐. 동포들이 $1,185.25을 모금하여 실내장식과 가구를 장만함.
1942.12 김하태 목사(5대)가 부임하여 4년간 봉직함.
1946.7 임두하 목사(6대)가 부임하여 2년간 봉직하다가 심장마비로 소천함. 
1948.9 양주은 전도사가 9개월간 목회를 담당함.  
1949.6 김하태 목사(7대)가 연회에서 재파송되어 4년간 봉직함.
1953.8 안병주 목사(8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7년간 봉직함.
1955.9 총공사비 $13,250.37($7,500.00은 미 감리교단에서 지원)로 목사관을 신축함.
1960.10 송 정률 목사(9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17년간 봉직하면서 동포들의 권익과 단합 그리고 교회성장과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봉사함. 
1965.9 당시 정도순 총영사, 송정률 목사, 김동우, 김명호, 김재곤, 김원용 교우 등이 교민회 발기위원회를 조직하고 회칙을 초안하여 동년 12월 26일 <상항지역 교민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한인회를 발족함.
1965.3 교회 부인회에서 바자로 모은 돈으로 충청도 양화리에 개척교회를 설립하고 전도사 생활비를 3년간 지원하다. 
1968.9 Methodist 교단과 United Brethren 교단이 통합됨과 더불어 교회 이름이 <상항한국인감리교회>에서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San Francisco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로 변경됨.
1970.6 California-Nevada 연회에서 1123 Powell St.의 교회건물 과 대지를 미감리교 Historic Site No.17로 지정하다.
1972.6 새 이민자들의 직업알선, 통역 등을 돕기 위해 교회 안에 <상항한인봉사회>를 설치하고 운영하다.
1977.7 차원태 목사(10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12년간 봉직함.
1988.10 유 석종 목사(11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11년간 봉직함. 재임중 교회 이전과  처음으로 직분제를 실시하였음.
1989.8 창립 85주년을 기념하여 두 차례 선교디너로 모금한 $12,000을 은평천사원(심신장애자를 위한 기관)에 전달함.
1993.11 교회건물의 시 사적지 지정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었으나 상항 시장 Frank Jordan의 거부권 행사로 일단락 됨. 한미사적보존회는 주 정부에 청원하여 교회 건물이 National Resister of Historic Place로 지정되다.
1994.6 3030 Judah St.의 새 건물로 이전하고 Talbert 감독을 모시고 800명이 참석한 가운데 헌당예배를 드림.
1995.1 박철수(Charles Buck) 목사가 영어회중 목사로 2년간 봉직함.
1995.9 처음으로 연합감리교회 한인코커스가 제정한 고시를 거쳐 권사, 집사 평신도 직분자들을 세움.
1996.9 처음으로 강금성, 박장희, 전명선 세 교우를 장로 평신도 직분자로 세움.
1997.7 염피터 전도사가 영어회중 목회자로 2년간 봉직함.
1998.9 박병호, 장석헌, 한근철 세 교우를 장로 평신도 직분자로 임명함.
1999.7 박 한규 목사(12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담임목사로, 박은석(David Park) 목사가 영어회중 목회자로 각각 2년간 봉직함. 
2001.1 여선교회에서 도서실을 만들어서 운영함.
2001.8 김진호 목사(13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영어목회를 겸하여 1년 8개월 간 봉직하다 건강상 이유로 사임함.
2003.7 김택규 목사(14대)가 연회에서 파송되어 3년간 봉직함.
2003.1 기념 강연회, 100년사 책 출판기념회 및 100주년 감사예배를 드림으로 교회 창립 100주년을 기념함.
2005.1 상항 한우회와 공동으로 천장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대위 목사(3대)의 유해를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묘역으로 천장함.